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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배우 히로스에 료코
국민 여동생에서 일본의 마지막 아이돌
그리고 성인 연가자로서의 성장 스토리

히로스에 료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일본의 배우 히로스에 료코는
1990년대에 국민 여동생과 일본의 마지막
아이돌로 활동하며 알려져 있다.
그녀는 보이시한 단발머리로 유명하며,
일본에서 어린 연예인이 단발머리를
하면 일단 히로스에 료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영화 <비밀>과 <러브레터> 등으로
알려졌다.

히로스에 료코는 일본 영화 <러브레터> <철도원>에
출연하여 한국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고,
일본 영화를 우리나라에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소속사인 'FLaMme'와 장기적인
계약을 맺고 있다.
그 외에도 중학교 친구 후지카와 큐지이와
한신 타이거즈의 레전드인 인물로
언급되기도 했다.
1994년,
여드름약 CF모델 선발대회에서 1등하여 데뷔하고,
도코모의 삐삐 광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나가세 레이코와의 모방 논란도 있었지만,
일부 평론간들은 다테쿄코보다는 나가세 레이코를
더 많이 모방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997년에는 인기 드라마 <비치보이스>에서
건강하고 귀여운 츤데레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 <진심으로 사랑하기 5초 전>으로
가수 데뷔 하였다. 이 곡은 히로스에 료코의 대표적인
주제가로 알려져 있다.
1997년에는 '히로스에 현상'으로 불리는 큰 인기를 얻었고,
방송 광고의 호감도 조사에서도 그녀의 광고가
최고 호감도를 기록하였다.
이로 인해 'CF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1998년부터는 엄청난 인기와 CF독점으로 인해
파파라치와 '스캔들 작가'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와세다대학에 입학하려는 시도가
'자기 추천' 입학전형이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지만, 합격 소식은 축하와 함께 전해졌고,
1999년 초에는 무도관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아이돌로서의 정점을 이루었다.
1999년 4월,
히로스에 료코는 '자기 추천 제도'를 통해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녀의 합격은 사회적인 현상으로 손꼽히는
아이돌의 명문대 합격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합격 소식에 따라 와세다대학 지원자수가 폭증했고,
TV 생중계로 발표되어 국가 차원에서도 주묵을 받았으나,
입학 특혜 비판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 되었다.
료코의 학업 생활은 비난과 트러블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일부 사건은 안티 팬들의
늘어남과 지속적인 이야기 속에 남아있다.
결과적으로도 료코의 경력에 아쉬운 부분이었다.
와세다 대학 사태 이후에도 히로스에 료코는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 남아있었다.

1999년에는
영화 <철도원> <비밀>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인기 있는 드라마에
출연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남자친구와의 동거설 등이 이미지 하락의
원인 중 하나였고, 이로 인해 작품 외 활동이
제한되었다. 이 시기에는 사소한 사건을
남자 문제와 연결하여 부정적인 기사들이
주로 다뤄졌다.
인터넷에서는 루머와 악성기사가 돌았다.
바닝프로덕션과의 경쟁 관계에서
악성 루머 소문도 있었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오역된 도시전설급 루머거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2002년 말부터 히로스에 료코는
머리를 길게 기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소속사에서 긴 머리를 금지했었는데,
이후로는 긴 머리로 변신하면서
성숙한 이미지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영화 <연애사진>, 드라마 <모토카레>,
야후BB의 CF 등에서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와는
다른 매력적인 성숙미를 보여줬다.

이후 가을에 와세다대학을 자퇴하면서
악연을 끊었고, 연말에는 츠카 코헤이와
함께 연극 <막말순정전>과 <비룡전>의 주연을
맡으며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한국 팬들에게는 진지한 작품으로 유명한
히로스에 료코는 청순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가졌으며, 그녀의 이미지는 대부분
진지하고 심오한 캐릭터로 강조 죄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아이돌 시절의 밝은 이미지가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굿 바이>의 아카데미 상 수상 이후,
히로스에 료코는 일본에서 또한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로 진지한 정통 연극 캐릭터로
자주 등정하며, 특히 40대 초반에는 어머니
역할을 자주 맡게 되었다.
한국에서 료코의 인기는 영화<비밀>의
개봉을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록 개봉은 일본보다 3년 늦었지만,
이 작품은 509만 명의 관객을 모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오랜 기간이 지난 작품으로서는
큰 성공으로 평가되어진다.

영화 <비밀>을 통해 히로스에 료코에 대한
관심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특히 중 고등학생, 대학생, 20대 관객들이
몰려 관객수를 높였다.
이후로도 히로스에 료코의 팬들은 한국의 일본 드라마
팬들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 <비밀>을 기점으로 히로스에 료코의 사진이
개인 프로필이나 홈페이지에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만화가 박무직도 그녀의 팬으로
알려졌었고, 그의 작품에도
히로스에 료코의 사진이 등장했다.

2002년에는 히로스에 료코가 쿠사나기 츠요시와
함께 출연한 단편 드라마 <미안해요>에서
한국어 대사를 성공적으로 소화했고,
이후 인터뷰도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2002년 말에는
히로스에 료코가 한국 팬들을 위해 팬미팅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능력을 보였다.
이는 그녀의 최초 팬미팅이었으며,
2008년에 공식 팬 클럽 'RHfriendle'이
해체된 후 마지막 팬미팅이 되었다.

히로스에 료코의 결혼 이후로는
'료코 세대'라고 불리는 팬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며 한국 오덕계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에서 히로스에 료코의 인기는 특히
높았으며,
2013년에 드녀가 한국을 방문할 때는
김포공항이 마비될 정도로 많은 팬들이 몰렸었다.

한국 내에서 히로스에 료코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2003년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지만, 결국
'히라야마 아야가' 역을 맡게 되었다.
2010년에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제로 포커스>에서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으며,
이 영화에서 한국 스태프들의 열정과
친절함, 맛있는 한식들이 인상 깊게
언급 되었다.
2011년에는 한효주가 히로스에 료코의 소속사와
계약하여 일본 활동을 시작하였고, 두 사람은
함께 동반 화보도 찍었다.

2013년에는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의
기자 회견이 한국 언론과의 유일한 인터뷰로 보인다.
한국에 정식 수입된 료코의 영화는 총 10편이다.
<철도원><비밀><와사비><연애사진>
<버블로 고><굿바이><폭렬닌자 고에몬>
<플라워즈><제로포커스><하나와 미소시루>
한국 팬과 일본 팬의 가장 큰 차이는
일본 팬들이 주로 아이돌 시절의 팬이었던 반면에
한국에서는 배우로서의 팬이 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배우로서의 인기가 강조되며,
대표작들이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히로스에 료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없었으며, 한국에서
인기를 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은 일본에서
큰 히트는 아니었지만, 명작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은 와타베 아츠로의 작품으로 일본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히로스에 료코의 대표작으로 <립스틱>을 꼽지만,
이 작품은 와세다대학 사태 도중에 방영되었던 무거운 소재와
난해한 이야기 구성으로 대중적인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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